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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마다 자라나다 박형동 [20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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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산그림
  • 등록일 : 2015-06-08
  • 조회수 : 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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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나무가 있었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 2호인 '화양동 느티나무'. 칠백살이나 먹은, 높이 28m, 둘레가 7.5m에 달하는 거목이다. 나무를 한 바퀴 천천히 돈다. 굵은 줄기에 무질서한 듯 질서있게,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향하여 둥근 탑을 쌓고 있다. 그는 그 나무 때문에 작업실을 그곳에 구했다고 했다. 나무를 한 바퀴 돌 즈음에 그가 나타난다. 그의 작업실은 나무의 그림자가 가 닿는 곳에 있다.




    그를 표현하는 키워드는 분명하다. '성장'. 그는 '성장 매니아'이자 '성장물 매니아'이다. 늘 새로운 일을 시도함으로써 안주하려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작업물 또한 성장물들을 주로 다뤄왔다. 현재 다니고 있는 서울시립대학교디자인전문대학원의 졸업논문 주제 역시 성장물에 관한 것이다. 그의 이력은 다채롭지만, 그것은 '성장'이라는 한 줄기의 단단한 지향을 품고 있다.

    나무는 키를 높여 뻗어나간다. 가지는 새 가지를 길러내며 제 스스로 굵어지고, 매해 차곡차곡 나이테를 쌓으며 제 몸통을 불려나간다. 어디로 향하든 제한은 없다. 그러니, 나무야말로 성장의 아이콘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박형동이 이 나무를 보고 작업실을 이곳으로 구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박형동의 성장은 나무의 성장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비유에 따르면, 오히려 '물길'에 가깝다. 그는 말한다. '처음에는 만화로 물길을 트기 시작했지만 작업을 해나가면서 물길의 방향이 바뀌기도 하고 물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는 유연한데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모양이 바뀌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중에 흩어진 물길이 한 곳으로 모일 거라고 속 편하게 생각하기도 하죠.'





    그 '물길'의 비유를 '변신'이라 불러도 좋겠다. 만화가로 시작해 애니메이션 감독을 거친 그는 한때 잡지에 일러스트를 싣다가 본격적인 북커버 일러스트로 이름을 높였다. 현재 그는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며 그림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림이라는 넓은 분야에서는 수미일관하지만, 그 안에서는 변신을 거듭한 셈이다.

    그는 그 각각의 분야에서 매번 꽤나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던 90년대 월간 <나인>이라는 독특한 잡지에 <요정들의 책>이라는 단편으로 데뷔한 그는 일본만화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던 만화계에서 개성있는 그림체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3년 제2회 독자만화대상에서 인디부분 2위를 차지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가 낸 만화단행본은 단편집인 <바이바이베스파> 한 권 뿐이지만, 2008 대한민국만화대상 인기상 후보에 오르고 만화장면들이 편집되어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패션쇼에서 상영되고 티셔츠로 만들어지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그의 만화가 시절의 팬들은 그의 신작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그는 아직도 '현역 만화가'다.

    그가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만화 덕분이었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가라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그의 작품을 눈여겨보던 이들이 손을 내민 것이다. '그때 실린 만화들을 보고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고 몇 군데 잡지사에서 일러스트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만화건 애니건 일러스트 건 '그림으로 이야기를 연출한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에 넘나들기가 크게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어려운건 감성을 바꾸는 일이에요. 만화장르 중에 감성이 좀 다른 소년액션만화 장르 같은 걸 만들어야 할 때가 힘만 잔뜩 들고 잘 안되더라고요.'

    잘 안되었다, 라는 고백에도 불구하고, 그가 참여한 애니메이션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시즌 1에는 콘티로 참여하다가 시즌 2에 들어서 아예 감독을 맡은 [우비소년]은 KBS 방영당시 국내공중파 애니방영작 중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2005년 대한민국애니메이션 대상에서는 TV시리즈부분 특별상을 수상했다. 극장판 [천년여우 여우비], [바리공주] ,[뽀롱뽀롱뽀로로]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력도 있다.
     


    그의 이름이 좀더 잘 알려지게 된 데에는 출판일러스트의 영향이 컸다. 많은 이들이 그를 '아, 그 책의 표지를 그린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가 책 표지 일러스트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친구 중에 북디자이너 김형균 씨란 분이 있는데 제 만화를 보고서는 소설의 표지일러스트를 하면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도 문학과 관련된 그림을 그린다면 왠지 누구보다 잘 할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시작된 책이 <플라이대디플라이> 였는데 운이 좋은 책이었어요. 기존에 한번 출판 된 적이 있는 상황에서 표지만 바꿔 새로 출간하는 것이라 출판사에서 큰 기대를 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는 거의 안 팔리던 책이 표지를 바꾼 후에 영화화가 결정되는 등 운이 따라붙어서 30만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된 거죠. 때마침 저도 애니메이션회사를 그만둔 때였고 그 때 이후로 일러스트 의뢰가 많아져 지금까지 4~50권정도 표지일러스트를 그렸습니다. 베스트셀러도 꽤 있고요.'

    그는 그것을 '운'이라 겸손히 말하지만, '표지 때문에 그 책을 구입했다'는 반응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가 한 작품 중에 베스트셀러가 많은 것을 전적으로 그의 표지 덕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출판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이력은 많은 베스트셀러 작업으로 다채로워졌다. [리버보이]를 비롯하여 [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슈퍼마켓 스타], [아빠는 가출중], [레모네이드 마마], [우리들의 스캔들>, [청춘예찬], [썸머스노우], [스타시커1,2], [이둔의기억1~6 권] 등. 단행본 뿐 아니라 판타스틱, 팝툰 등 잡지 표지에서도 빈번하게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러던 그가 그림책으로 다시 가닥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정체되는 느낌을 견딜 수 없었노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계속 같은 스타일을 요구했다. 그것이 그들이 박형동을 찾는 이유였다. 그에게 '안주'는 '불안'이다. 그리고 동경과 불안은 그를 수미일관하게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다. 그리하여, 그는 현재 시립대학원에서 다시 처음부터 학생으로서 길을 찾아가고 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벌이지 않고 매번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늘 그래왔듯이. 그는 그 과정을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과정에 비유한다. 새로운 변신을 할 때마다 그는 번데기가 되었고, 그 안에서 꾸물꾸물 새로운 자신을 만들었다.




    그렇듯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빛이 났던 박형동의 뿌리는 뜻밖에도 '문학'에 자리잡고 있다. 그림이 아닌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문학에 대한 수미일관한 애정을 품고 있다. '어머니가 글을 쓰셨고 누나가 출판사를 다니는 등의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어렸을 때부터 게임 같은 것보다 문학책 읽는 걸 좋아했어요. 세계문학전집을 좋아해서 밤마다 이불 속에 엎드려 [수레바퀴 밑에서], [폭풍의 언덕] 같은 작품들을 읽다가 감상에 젖어 잠이 들곤 했죠.' 그는 영화들도 문학적인 영화를 좋아했다.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베티블루]나 [퐁네프의 연인들] 같은 작품 덕분에 그는 '예술적인 나라' 프랑스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결국 전공을 결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그에게 불문과는 '가장 예술에 가까운 학과'였다.

    사실 그에게 불문학은 미대는 안 된다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친 차선이었지만, 문학과 프랑스는 그만의 개성을 만들어가는데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림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미대를 가는 것보다 문학을 계속 공부하는 것이 더 자신의 그림에 좋으리라는 판단을 내린 그는 90년대 중반에 혼자서 배낭을 메고 한달간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에 다녀오면서 유럽과 프랑스의 만화의 매력을 발견했다. '그 당시 한국의 만화스타일은 좀 달랐죠. 저는 예술만화를 하고 싶었는데, 한국에는 그런 시장이 없었습니다. 유럽에 뿌리를 둔 저의 그림 스타일을 설명할 수 없으니, '일러스트같다'고들 하더군요.' 그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데에는 시대적인 이유도 있었던 것일까. '일러스트적'이고 '문학적'인 만화가. 박형동의 지금은 이미 만화가이던 시절에 제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그의 문학에 대한 지향은 북일러스트레이터 시절에 빛을 발했다. 그는 표지를 그리기 위해 읽고 또 거듭 읽었다. 그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책을 의뢰받았을 때 책의 기획서만 보고도 책의 표지나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지만 최대한 여러 번 완독을 하려고 노력해요. 왜 '사람'도 그렇잖아요. 그 사람의 첫인상이 있는 거고 사귀면서 발견되는 매력도 있고 시간이 지난 후 곱씹어 보았을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주었던 의미 같은 것을 새로 발견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좀 비효율적이더라도 책을 읽기 전 첫 인상만 가지고 스케치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 짬짬이 메모와 러프스케치를 하고 책을 다 읽고 나서 며칠 묵힌 후에 또 스케치를 해서 최종적으로는 그중 가장 좋은 그림을 뽑아 그림을 완성합니다.' 그의 그림은 그렇듯 텍스트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의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는 자신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인으로 '동경'을 꼽는다. 늘 본받고 싶은 이를 발견하는 그가 요즘 가장 동경하는 이는 앤서니 브라운이다. 수많은 그림책 작가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그들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그의 성장과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듯 높고 먼 곳을 보는 눈은 현재의 자신을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는 그 때문에 작업이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눈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의 완성도에도 엄격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불안은 동경에서 오는 것일까. 그는 말한다. '전 항상 제가 미완성이라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아직도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요. 앞으로 어떻게 작업의 물길이 방향을 바뀔 지 알 수 없고요. 그래서 항상 설레고 또 항상 불안합니다. 아마 평생을 그렇게 살지 않을까요?'

    그리하여, 그는 쉴 새 없이 배운다. 유학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 대신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수업을 듣고 배우는 방식을 택했다. 만화도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출판만화 워크샵을 들으며 독학했고, 북아트 수업, 인쇄관련수업, 잡지디자인수업, B.I 수업, 캘리그라피 수업 등 2~30개의 수업을 들었다. 현재는 인터렉티브하게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는 툴을 공부하고 있다. 수많은 수업에서 강사로 초빙받는 위치에 올라선 이후에도 그는 의미있고 재미있는 강좌라면 수강신청을 망설이지 않는다. 계속 아웃풋을 뽑아내야 하는 작업과정 때문인지 그는 자신을 채우는데 열정적이다. 그 덕분일 것이다. 그의 변신이 매번 성공적인 것은.

    그는 만년 학생이지만 또한 선생님이기도 하다. 초등학교에서 만화애니메이션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거꾸로 배우는 게 많다. '저는 '선생님'이란 말 보다는 '매개자'라는 말을 좋아해요. 위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각자의 성장을 도와주는 매개자가 되는 거죠. 예술교육이란 건 학생 각자의 잠재된 가능성을 자신이 발견하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거꾸로 제 안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아이들이 깨우쳐주기도 한다는 거예요.'






    만화에서 시작하여 그림책으로. 내게는 그의 변신의 과정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느껴졌다. 무엇이 그를 회귀하게 한 것일까? 그는 '이야기에 대한 욕망'이라는 자신의 화두를 꺼내놓는다. 만화, 애니메이션, 북일러스트. 그 모든 것들은 되짚어보면 한결같이 '이야기'라는 고갱이를 품고 있다. 그림과 이야기. 그 둘의 자유로운 결합을 위하여, 자유로운 넘나듦을 위하여 그는 이리저리 갈라졌다 다시 만나는 물길처럼 흘러 이곳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회귀'는 아닐 터였다. 그는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그의 성장의 폭이다.

    그에게 궁극적으로, 그가 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의 대답은 뜻밖에 '조력자'였다. '예술가는 조력자라고 생각해요. 제 그림을 보는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림이 도움이 된다는 것은 무척 막연한 이야기다. 단순히 그림을 보았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정도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 하지만 그의 '도움'은 훨씬 엄격한 기준을 가진다. 진정한 조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착한 마음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많은 성장소설이나 성장영화, 성장만화 같은 것을 읽다보니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러 조력자들을 만나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조력자가 되어있더라고요. 좋은 조력자가 되는 건 실제로 어려워요. 어설프게 누군가를 도와주는 건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현명한 방법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간다는 건 진짜로 마음이 성장했다는 증거가 되는 거죠.'

    그에게 있어 성장의 증거는 누군가의 조력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실질적이고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을 때 그의 성장이 '인증'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성장은 다시 한 번 나무와 만난다. 오랜시간 공들여 켜켜이 나이테를 쌓은 나무야말로, 자라나는 이의 작업실을 그 그늘에 넉넉히 품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가질 수 있을 터이므로..
     








    Editor _ 박사 ( catwings@gmail.com )


    대학에서 시와 인도철학을 배운 후, 책, 라이프스타일, 고양이, 여행 등 흥미를 끄는 것들을 주제로 다채로운 글쓰기를 하고 있다. 책으로 『 여행자의 로망백서』, 『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 나의 빈칸 책』, 『 비포컵라이즈 뉴욕』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