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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못지않은 열정으로 김복태 [2009.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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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산그림
  • 등록일 : 2015-06-08
  • 조회수 : 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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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한가한 평일의 오후, 김복태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위해 합정동으로 향했다. 그날 따라 유난히도 한적한 거리는 곱게 물든 단풍잎이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 듯 복잡한 도심마저도 고요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약도를 확인하며 걷는 동안 작가님의 그림책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기자로 활동하며 여러 작가들을 만나왔지만 이번 인터뷰는 어린시절 즐겨 보았던 그림책속의 그림작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다니 개인적으로 매우 기쁘고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은 합정동의 한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 온화한 미소를 가지신 사모님께서 나오셔서 기자를 반긴다. 차를 마시며 간단한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에 들어갈 준비를 하며 마음이 들뜬다. 많은 작가들이 말한다. '내가 60세가 되어도, 70세가 되어도 그림을 그리고 있으리라고.' 김복태 작가님을 만나뵙고 오니, 그림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모든 세대가 한결같고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것이구나... 새삼 느껴본다. 또한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더 나아가 세상에 선을 베풀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김복태 작가님. 선생님의 말씀이 시작되자 기자는 귀를 쫑긋 세워 이야기에 집중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해가 질 때까지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김복태 작가님. 하루는 미술선생님이 찾으신다기에 교무실로 갔더니 선생님께서 원고를 보여주시며 그림을 그려보도록 권유하셨다고 하신다. 지금에 와 알고 보니 그 원고의 글작가는 당시 국내에서 잘 알려진 동화작가이자 본교의 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중이였던 김성도 선생님이셨다.

    '그때 펜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여간 어색하지가 않았어요. 그 후로 내 그림이 책으로 나왔는지 안나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감히 처음으로 일러스트를 그린 경험이였어요.'

    화가의 꿈을 간직한 채 서울에 왔지만, 후원자가 없는 객지생활의 시작일 뿐이었다. 우연히 고향친구의 도움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으나 평소에 만화를 즐겨 보지도 않았던 작가에게 만화작업은 매우 어려웠고,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힘들었다고 하신다.

    그러던 중 일러스트라는 장르가 회화에 가까우면서도 자신의 취향과 맞는 분야라는 것을 깨닫고 한 달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유명출판사와 잡지사에 문을 두드리면서 1975년경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당시 중앙일보사 출판국 주간의 추천으로 중아일보사에 입사해 편집디자인을 하게 되지만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6년 만에 그만두고 그 해 새로운 충전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러스트의 기초를 익히고 그림의 변화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으로 LA에 있는 Otis/Parsons 미술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 과정을 밟았고, 그때 배웠던 기초 드로잉과 다양한 기법, 그리고 그곳에서의 문화적 체험과 느낌들이 작가에게 많은 영향과 자신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때의 충전이 지금은 모두 소모가 된 것 같아요. 또다시 무언가 충전하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라는 작가님의 말씀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발전하고자 노력하시는 작가님의 마음을 느끼며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작가님께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초창기 시절에 대한 질문을 하자 '저역시 직접 체험해 본 세대라 할 수 없고 선생님들로부터 귀동냥으로 그때의 상황을 듣곤 했어요.' 라고 말씀하신다. 작가님도 선배작가들 틈에 낀 나이어린 신인작가로 데뷔하셨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는 유명한 화가들, 예를 들어 이중섭, 김기창 등과 같은 화가들를 통해 삽화가 그려졌다고 한다. 또한 일러스트 장르가 순수문학과 어우러지면서 사회적인 인식이 매우 좋았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삶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대우였다고 하신다.

    1980년대 들어서 어린이 그림책이 전집 형식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발행되면서 작가층도 넓어지게 되고 하나의 장르로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또 작가들이 서로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친목도모를 위한 그룹도 만들어지고, 1988년 출판일러스트 분야를 위한 공익단체 '한국출판미술가협회(표1)'가 창립되기에 이른다. 선생님 역시 창립준비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셨다.

    당시에는 세련되지 못한 인쇄기술 때문에 컬러그림도 먹선에 의존하는 기법이 대부분 이였으나 김복태 작가는 먹 선을 뺀 컬러그림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선보였고, 그것이 오히려 반응이 좋아 유아 잡지에 연재되는 전래동화에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신다. 




    참고 표1) 한국출판미술가협회 창립 일지

    1988. 2. 18  

    출판협회에서 주관하는 제 1회 국제그림동화원화전 출품작가 모임시 작품출품 논의 과정에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의견을 제시할 단일창구의 필요성 대두.
    1988. 5. 10
    출판협회 주최로 롯데미술관에서 열린 제 1회 국제그림동화원화전을 계기로 해당 전문인의 국제교류를 위한 공익단체를 설립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작품판매 수익금으로 협회설립기금 120만원 확보.
    1988. 5. 20
    상기 원화전 한국측 출품작가 34인을 1차 발기인으로 하는 가칭 한국출판미술가 협회를 발족시키기로 하고 이한중, 김복태, 강우현, 이성표, 유애로 등을 창립준비위원으로 지명.
    1988. 9. 08
    상기 준비위원이 모임을 갖고 발족안내문 및 정관초안 검토.
    1988. 9. 22
    1차 발기인 전체회의에서 정관 및 발족안내문 검토를 거쳐 원로 일러스트레이터인 김영주선생을 창립준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창립총회 이전에 본협회 설립목적에 동의하고 가입을 희망하는 현역 일러스트레이터는 전원 창립 발기인으로 영입하기로 결의.
    1988. 10. 04
    준비위원 모임에서 창립총회 장소 결정. 발족안태문 발송 및 현역 일러스트레이터 명단 파악 등 업무분담하고 1차 발기인 전원에게 협조공문과 유인물 발송.
    1988. 11. 11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창립
    1988. 12. 10
    창립기념 [어린이 책과 일러스트레이션의 발전을 위한 세미나] 를 출판협회와 공동으로 개최. (장소 : 출협강당 / 연사 : 일본 후쿠인칸출판사 마쓰이 다다시 선생)
    1989. 03. 02
    한국출판미술가협회 회원명부를 발간하여 각 출판사 및 관계기관에 배포.
    1989. 05. 10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709-8 호산빌딩 2층에 협회사무국을 개설하고 전담직원 상주.
    1989. 10
    [한국출판미술가협회] 로 출판사 등록
    1989. 11. 11
    국내 최초의 일러스트레이션 자료 연감 [Illuatration 1990] 발간

     



     


    일러스트레이터 1세대 그룹인 '무지개일러스트회'는 1981년,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작가 14명이 친목도모를 위해 결성하였다. 그 후로 젊은 작가들이 연이여 참여하면서 무지개일러스트회는 더욱 활성화되었지만, 모두가 오래도록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고 하신다.

    현재 17명의 회원들은 지금도 인사동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해마다 봄, 가을에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그룹활동의 커다란 변함은 없지만 최근 들어 전성보 선생님, 홍성찬 선생님의 거동이 불편하시다니... 자연의 순리라지만 안타까운 마음의 표현을 금치 못하셨다. 특히 선생님들의 일러스트에 대한 애정과 후배사랑의 모습은 김복태 작가님께 커다란 감동으로 남아 인생의 지표가 되신다니... 한번도 뵙지 못한 두 선생님들이 그리워진다.

    '무지개일러스트회'는 지난 1988년 제5회 전시회 때 화랑에 걸었던 그림 40점을 어린이 병원, 보육원, 장애아동재단, 어린이 도서관등에 기증하였는데 이와 같은 활동은 작가에게 큰 보람으로 기억된다고 하신다.

    그리고 2009년 올해에는 서울시와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캄보디아 어린이에게 희망을' 이라는 운동화 나눔 축제에 참여하셨다. 10월 26일부터 청계천 광장에서 치러진 운동화 나눔 축제는 시민들이 운동화 그리기 신청을 하면 그 자리에서 운동화 한켤레를 준다. 그 운동화를 맘껏 꾸며서 카드와 함께 센터에 제출하면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선물로 전해진다고 한다. 새운동화를 보내주면 모두 시장에 내다 팔아버리기 때문에 일부러 그림을 그려 보낸다고 한다.

    무지개회 선생님들이 그리신 운동화는 선생님들의 원화와 함께 국내전시를 마치고 국제전시로 진행이 될 예정이며 전시를 마치고 캄보디아 유네스코에 기증하기로 하셨다고 하신다.

    '이러한 사회적인 일들에 참여하는 것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매우 뜻깊은 일이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여건이 되면 계속 참여할 생각입니다.'

    그림으로 나눌 수 있는 작은 사랑의 실천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에너지가 되어 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출판사에서 일러스트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그림이다. 작가의 경력이나 나이로 대우 받는 것은 아니라는 작가의 말. 최근 들어 일러스트 저변이 확대되면서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현실과 발맞춰 나가기 위해 늘 변화를 시도해 왔다는 김복태 작가.

    근래 들어 작업했던 '공자'라는 책의 그림이 바로 작가에게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라고 한다. 끊임없는 그의 도전과 새로운 시도에 응원의 메세지를 보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의 작업스타일은 매우 다양한 변화를 거쳐왔습니다.' 책마다 캐릭터가 바뀌고 화풍도 달라 어떤 편집자는 도대체 작가의 그림이 어떤 스타일이냐고 물어오기도 했고, 어떤 편집자는 '변화의 시도와 적응이 남다르다'고 평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그림에 주체성이 없다고 들리기도 했지만, 애써 작업한 그림이 책이 되어 나오면 스스로 불만족을 느꼈고, 같은 스타일로 다시 그리기 싫었지요.'

    그는 보다 더 나은 그림기법을 연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로 선보인 작품들이 인정받아 왔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것이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정서가 베인 전통 그림에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고 하신다. 작가가 찾은 새로운 그림세계, 우리의 정서가 베인 그림이 더욱 빛을 드러내길 기대해본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다소 짧게 걸리는 작업도 있지만 편집자와의 의견 조율에 있어 밑그림을 여러 번 그리는 고단함이 뒤따르기도 한다고.

    '나는 그림실력이 딸려서 남이 한번 그릴 그림도 두세 번 아니면 다섯 번 정도 그려야 해요. 몸으로 때우는 거죠.' 라며 농담 섞인 말로서 겸손을 표한다. 그러나 작가의 남다른 노력, 그것이야 말로 프로로서 늘 지녀야 할 기본자세가 아닐까...

    최근에 작업을 완료하여 곧 출간 예정인 보림출판사의 '돌잔치'라는 책이 그런 경우라고 한다. 작업도중 기획이 아예 바뀌기도하여 더미북만 다섯 번이나 만드셨다고. '그러다보니 완벽할 때까지 스스로 그림의 수정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책은 한 번 출간되면 수정하기 쉽지 않잖아요. 인세를 받는 책이니 더욱 최선을 다해야지요.'

    야구선수가 조금만 방심해도 안타를 치지 못하는 것처럼 작가들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작품활동을 오래할 수 없다고 강조하신다. 작가들은 전화벨이 울릴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심지어는 작업 도중 과로와 스트레스로 입원을 하게 된 후배작가도 있었다며 '지금은 캐릭터를 디자인하여 연봉 1억대 작가가 되어 있답니다.' 하며 웃으신다.

    작가들에게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작업한 시간만큼의 충분한 휴식을 필요로 할 것이다. 김복태 작가는 휴식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생각 없이 주로 집에서 쉬거나 등산을 한다고 하신다. 종종 집근처의 학교 운동장에 나가 어린아이들과 공을 차며 노는 것이 매우 즐겁다는 작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내면의 천진함이야 말로 오랜 세월을 그림책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와 그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앞으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에게 맞는 소재를 선택하여 우리의 전통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느리고 꼼꼼하게 그림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신인 작가들이 힘들어하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의 모습이며 인내하고 노력한다면 웃을 때도 있을 거라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또한 존버닝햄의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아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그림책이라는 모리스샌닥의 메세지를 전해주시며, 그림책을 생산해내는 작가들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도 짚어주셨다.

    '산그림을 통하여 일러스트 작가들이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고 발전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애써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씀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 한다.
     

     



    Editor_ 김희정 ( E-Mail : khj00227@n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