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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회 볼로냐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정지예 [2009.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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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산그림
  • 등록일 : 2015-06-07
  • 조회수 : 4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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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전이 끝난 후 더욱 유명해진 작가들이 있다.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정지예 작가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모의 정지예 작가의 말말말. 그가 쏟아놓은 자신의 이야기들은 외모만큼이나 소녀같은 내용과 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린 시절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 그와의 인터뷰. 상큼 발랄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로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원색적이고 정감 가는 작품들을 선보여온 정지예 작가의 작업 원동력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함박 눈, 해바라기, 비가 새던 집, 양동이, 후두둑 쥐가 지나가는 소리, 천장에 그려진 쥐 오줌 자국들, 고개 숙인 해바라기의 시커먼 얼굴에 대한 두려움 등이 모두 그의 어린 시절을 이루던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지금까지도 작품에 임할 때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재미있게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지예 작가가 5살쯤, 타잔놀이를 하다 오른팔을 다친 적이 있었다. 병원에 선 모두 오른팔을 잘라내야 한다는 진단뿐... “팔을 잘라야 하니 이제부터 왼손으로 글을 쓰게 하세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어린 그는 겁이 나기보다는 왼손으로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고 한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던 건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호기심과 창의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여곡절 끝에 큰 병원에서 무사히 팔을 절단하지 않고 수술을 마친 후 이상 없이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그 때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고 한다.

    그의 오른팔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도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우리에게도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마터면 그의 크리에이티브한 작품들을 구경도 못 할 뻔 했으니 말이다.  







    서양학과 재학시절 근로 장학생을 하며 디자인계열의 학생들만 본다던 [디자인뉴스]라는 신문을 우연히 접하게 된 정지예. ‘이건 뭐지?’하는 생각에 신문을 들춰보던 그는 이혜리 선생의 「솥뚜껑 속의 아이들」이라는 그림을 보고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바로 이거다! 이런 그림을 그리면 정말 행복하겠구나!”하는 생각에 그 때부터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혜리 선생을 만나는 것이 꿈이었을 정도니 정지예 작가의 일러스트에 대한 열망은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서양화를 전공하던 학생 정지예는 어떻게 하면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지 방법도 몰랐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전무했다고. 단 한 가지 남은 방법은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 덕에 출판미술협회공모전 1,2회 당선, 황금도깨비상 수상, 아시아 비엔날레 수상, 09년 노마 콩쿠르 수상, 볼로냐 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등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그만큼 공모전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켜온 그는 작가가 된 후, 직접 이혜리 선생을 만났을 땐 마치 흠모하던 연예인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실 이혜리 선생의 그림을 통해 일러스트를 알게 된 정지예에게 그 정도의 반응은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많은 공모전에서의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정지예 작가도 올해 수상은 의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목적이 있었다고. 2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문득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보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그. 동시에 만으로 40세가 되는 자신에게 뭔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마침 3월 30일이 자신의 생일이었고, 볼로냐 아동도서전 행사기간과 시기가 맞아 떨어져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출품 후 결과를 기다리던 시간은 두렵고 떨렸지만, 수상여부를 떠나 겸허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던 순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끝내 자신이 선택한 자신에게 줄 선물을 마련해 낸 것이다.



     


    한 때 엄청난 작업량으로 유명했던 정지예 작가에게 요즘은 어떠하냐는 질문을 해봤다. 작년 9월부터 개인 작업을 제외하고는 쉬고 있다고 한다. 예전엔 고작 하루에 3~4시간의 수면으로 버텼고, 작업 도중 졸다가 붓을 떨어뜨려 작품을 물감 범벅으로 만들었던 기억도 있는 정 작가. 지금도 그 때의 열정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사실 현재는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막막함과는 좀 다르다며, 이제는 정지예 나름대로의 세계를 만드는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앞으로는 스타일이나 기법 등 감성적인 면은 유지하되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그저 그의 작품 자체를 정지예로 봐달라는 그다.

    의뢰받은 작업에 들어가기 전 그는 원고를 받으면 원고가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파고든다. 주인공의 성격, 스토리, 컬러 등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한다. 작업 전 구상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확실하게 자신만의 그림을 개성적으로 표현해 낸다.

    이번 볼로냐에서 수상한 「줄줄이 줄줄이」 역시 ‘도둑고양이들이 쓰레기를 모아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낸다.’는 내용에 딱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스스로 고양이가 되어서 집안의 구석구석을 탐험해 봤다. 부엌의 낡은 행주, 욕실의 너덜너덜해진 때밀이 수건, 옷장 속의 헌옷, 신발장에 숨어있던 잡동사니 등등 집안 곳곳에서 소스를 찾아 낸 그는 작품을 좀 더 확실히 표현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경험을 해본만큼 한 땀 한 땀 작업을 해 나가는 과정도 즐거웠고 그 만큼 멋진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이다.  








    볼로냐에서 돌아온 후 정지예 작가는 지난 4월 말부터 5월까지 한 달간 인사동 부남미술관에서 ‘색동 고양이 지랄랄展’을 성황리에 마쳤다.

    전시회의 주제이자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제목 그대로 고양이와 색동. 뭔가 새로운 것을 빵하고 터뜨리기보다는 하던 것을 보여주자는 의미로 고양이와 색동을 테마로 정했다. 여기에 마구잡이, 야단법석의 행동이라는 의미로 ‘지랄’이라는 단어를 넣고 싶었다고. 한마디로 ‘흥겹게 야단법석을 떨자.’는 의미인데, 리듬감을 부여하기 위해 ‘지랄’에 ‘랄’을 하나 덧붙였다고.

    색동의 이미지는 역시 어린 시절 색동저고리를 입고 부채춤을 췄던 기억에서 기인한 것. 어느 날 지인에게서 ‘촌스럽지 않게 원색을 즐겨 쓰는 것 같다’는 평을 듣고 난 후 문득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덕에 그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면서도 본인은 눈치 채지 못했던 색동에 대한 열정과 이미지를 이번 전시회에서는 시원하게 선보일 수 있었다.

    여기에 핸드폰 벨소리를 검은 고양이 네로로 할 정도로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 정 작가는 다채로운 표정의 고양이 인형과 고양이들을 위한 의상과 옷장, 커다란 집, 집 비(비처럼 내리는 집) 등 고양이와 관련된 여러 아이템을 선보이며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많은 작품 중 유독 정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작품이 있다. 신인시절 대교의 학습지 표지에 실렸던 개구리들이 그 첫 번째다.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을 사용해 개구리를 표현했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컬러였던 빨강색 개구리가 심의조정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된 것. 하마터면 사장될 뻔했던 그림이 편집자의 설득으로 표지에 실리게 됐다고 한다. 어찌 보면 앞으로의 작가 생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던 사건이 전화위복이 되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같은 뚝심이 지금의 정지예 작가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97년 처음으로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한 몬테소리의「커다란 생쥐」 역시 그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당시 본인을 신인이라고만 생각했던 정 작가는 스스로 감당하기엔 힘든 작업이 아닐까 고민도 했다지만 생각 외로 글이 빨리 나왔다고 한다. 스토리에 대한 구상이 끝나면 그림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그의 작업 스타일 덕에 아주 재미있고 훌륭한 그림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후 출판사의 방문판매사원이 이 책으로 영업을 할 정도로 인기 있는 그림책이 되었다고.

    여담이지만 지인 중에 아직 결혼 전인 사람에게 ‘혹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커다란 생쥐」를 선물하며 프로포즈를 해보라.’는 권유를 한다고 한다. 생쥐를 너무 사랑한 고양이가 고양이털, 수염, 발톱 등을 없애고 신부인 생쥐가 만들어준 생쥐 옷을 입게 되면서 커다란 생쥐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내용은 단순한 그림책을 벗어나 어른들의 프로포즈 선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커다란 생쥐」 후속편도 준비하고 있다. 생쥐와 생쥐가 된 고양이가 딸을 낳게 되는데 그 딸이 고양이와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생쥐와 커다란 생쥐는 딸의 사랑을 말릴 수 없어 고양이 사위를 들이게 되는데... 결국 그 사위 덕에 장인인 커다란 생쥐는 고양이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고 모두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정지예 특유의 위트와 재치 넘치는 후 속편도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을 워낙 좋아하는 그는 출판사와 작업을 할 때도 동물과 관련된 일을 골라서 할 정도로 동물에 심취해 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전생에 동물이었나 보다.’며 고양이과 동물에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이입시켜 작업한다. 사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 캐릭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동물이라는 느낌보다는 의인화된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까? 그림을 그릴 때도 화면 밖이 아닌,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느낌으로 작업을 한다고. TV를 볼 때 가끔 ‘저 TV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내가 보일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그릴 때의 느낌이 그렇다고... 그림 속의 캐릭터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작업하는 특유의 습관 덕에 새벽에 작업을 할 때면 온몸이 쭈뼛하게 굳을 정도로 무서울 때가 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일러스트별의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과목은 캐릭터 개발 연구. 본인이 일러스트를 시작할 때의 막막함을 다른 후배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강의지만 정작 학생들에게 받는 것이 더 많다고 한다. 사실 정지예 자신이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학생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이 한 마디를 강조한다. “종이와 연필을 두려워하지 말라.”

    특히 신입학생들에게 1분 동안 아무거나 그리도록 즉석 과제를 내주면 종종 눈치만 보며 그리기를 두려워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는 이런 학생들에게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서 네 머리에 있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겠니? 낙서하는 습관을 들이면 자유로워 질 거야.”라며 생각을 가슴으로 느껴서 손으로 옮길 수 있는 작가가 되기를 권유한다고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당부하는 말로 ‘자기와 닮은 그림을 그리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어렵게 여기지 말고 그려내 ‘가장 자기다운 작가가 되라.’는 충고가 그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마지막 말이라고.  






    집에서 작업을 하다가 작업실을 차려 나온 지 1년이라는 정지예 작가. 집 밖으로 나오니 몰랐던 것이 너무 많아 신기했다는 그. 전엔 그저 몰라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쳤던 것도 알고 보니 배워야하는 거였다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그. 요즘 버스를 타며 즐겨본다는 ‘양화대교 아래의 악어’ 도 그가 집 밖으로 나오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다. ^^ 그의 순수하고 즐겁기만 한 작업 세계가 영원히 지속되기 만을 바라며, 사랑스럽고 톡톡 튀는 정지예 작가와의 즐거웠던 인터뷰를 마무리 한다.
     

     




    Editor_ 전선미 ( E-Mail : guroemon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