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일러스트레이터 이명옥, 정효섭 [200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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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산그림
  • 등록일 : 2015-06-07
  • 조회수 : 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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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부를 행복이라는 섬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로 정의해 봐도 될까? 동반자와 같은 일을 하는 느낌은 어떨까? 좋은 점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일러스트 계에도 이처럼 같은 일을 하며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부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많다. 오늘은 공기 좋은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부부 일러스트레이터 1호로 잘 알려진 정효섭, 이명옥 부부의 ‘홈 스윗 홈’이자 그들의 작업실을 찾아가 봤다. 세 자녀와 함께 결혼 13년 차에 접어드는 이 부부의 행복 유지 비결과 좋은 작품 선보이기 비법을 들어보자.





    두 사람은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던 중 몇 번 스치게 된 인연으로 연애를 시작.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한 후 지금까지 서로를 위하며 일과 가정생활 모두를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그들이 처음 일러스트를 시작했을 땐 어땠을까?


    이명옥 :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미술부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집안에 형제가 많다 보니 형편상 대학진학은 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마침 둘째 언니의 소개로 구구출판사의 양후영 선생님 작업실에서 그림도 배우고 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였으니까 20년 정도 전이겠네요. 그 후로는 양후영 선생님 작업실을 자주 드나드시던 최충훈 선생님과 연이 닿아 그 분 밑에서 그림도 배우고 프리랜서로 일도 할 수 있었지요. 무엇보다도 무지개 일러스트 회원으로 활동하시던 최 선생님 덕에 원로 작가 선생님들도 알게 되고, 출판사 일을 할 수 있었던 덕에 지금의 남편인 정효섭 작가도 만날 수 있었습니.

    정효섭 : 저 역시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주로 만화를 그렸고, 고등학교 때는 미술부 활동을 하며 미대 회화과 진학을 목표로 했었지요. 하지만 입시에는 운이 없었는지 재수까지 했는데도 미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어요.


    결국 인덕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하게 됐지요. 인덕대학 입학 후에도 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자연히 학교생활에 적응도 힘들었죠. 그러던 중 당시 학과장님께서 제게 일러스트를 소개해 주시더군요. 재능이 많아 보이는데 이 분야로 한번 도전해 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일단 독학으로 일러스트를 시작하면서 서서히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88년에 교수님 추천으로 강낙규 일러스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죠. 군복무 후 91년부터 본격적으로 강낙규 일러스트에서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95년까지 쭉 광고 일러스트를 하다가 교원에 입사하면서 출판 일러스트에 발을 딛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이명옥 작가를 만나 결혼도 하고 97 년에는 프리랜서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작업을 고집하는 남편 정효섭 작가와 수작업을 고집하는 아내 이명옥 작가의 작업 스타일과 취미, 성격 등을 단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디지털 남편과 아날로그 아내’ 정도? 연필의 서걱거리는 소리와 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붓의 터치 감, 지우개 가루가 너무 좋아 수작업만 한다는 아내 이명옥씨와는 반대의 이유로 컴퓨터 작업만을 고집하는 남편 정효섭 씨. 두 사람의 상반된 기호는 참 닮은 듯 하면서 다르고, 음각과 양각의 절묘한 조화를 느끼게 한다. 같은 일러스트 작가이다 보니 서로 영향도 많이 받고 조언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 부부는 서로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명옥 : 그림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듯 같은 것이 그림이지요. 허점이 보이면 서로 거침없이 조언을 해줍니다. 그러면서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거죠. 정효섭 작가는 특히 집중력이 좋아요. 아이가 셋이다 보니 작업을 하다 보면 살림과 육아에 정신이 분산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집중을 잘 하더라고요. 해야 할 작업이 있으면 밤샘도 불사할 만큼 정신력과 체력이 강한 것 같아요.


    정효섭 : 이명옥 작가는 색깔이 분명하고 그만의 정서가 있습니다. 저도 그림 자체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정서적인 부분에서는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작업과정 중 이 작가가 보여주는 모습이 자극이 되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이 작가는 특히 노력을 많이 합니다. 아마 제가 알고 있는 작가 중에 가장 노력하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작업 전에 자료조사와 분석을 완벽할 정도로 꼼꼼하게 하고 있어요. 어떨 때는 실제 작업 시간보다 자료조사 하는데 시간이 더 걸릴 때도 있는 것 같더군요. 여담이지만 이명옥 작가가 자료조사를 너무 철저하게 해서 원고 내용을 수정한 적도 있어요.


    이명옥 : 사실 그렇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니 만큼 조금이라도 더 완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아이들이 보는 것이니만큼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주제만 주어지고 나머지는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겨지는 작업을 선호합니다. 그림이란 작가가 풀어가기 나름인데, 작가의 상상을 배제하고 자세한 상황 컷을 묘사한 후 ‘이대로만 그려라.’ 하는 것은 저하고는 잘 안 맞더라고요.

    정효섭 : 저는 즉흥적인 작업을 좋아합니다. 그렇다 보니 단편적인 작업이 저하고 잘 맞는 것 같아요. 지금하고 있는 학습지 일러스트는 그런 면에서 저하고 맞습니다. 설명적이고 딱딱한 느낌의 일러스트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개인 작업이 아닌, 의뢰가 들어온 작업에 작가적 상상을 첨가하는 것이 아직은 잘 안되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아직 시도해 보지는 못 했지만 크로테스크하고 어두운 정서를 표현한 일러스트를 한번 그려보고 싶어요. 어린이용 일러스트에 어두운 정서라는 것이 안 맞을 거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림만큼 표현이 자유롭고 무한대의 영역을 자랑하는 분야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선보인 후 판단은 독자들이 알아서 해주는 거죠.  



     


    이 부부는 서로 좋아하는 작가와 분위기도 확연하게 다르다. 이명옥 작가는 훌륭한 데생력과 펜터치감을 자랑하는 아서 라컴(Arthur Rackham), 회화적 느낌이 강한 비네트 슈뢰더(Binette Schroeder), 두산 칼라이(Dusan Kallay)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고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중 두산 칼라이의 꿈꾸는 듯 고운 색감과 완벽한 장식적 표현은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이명옥 작가의 그림을 볼 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유럽풍의 감성은 그냥 표현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반면, 정효섭 작가는 미니멀 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팀 버튼 감독의 작품이 바로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정적이고 어둡지만 스토리가 있는 예를 들면 「우울한 굴소년의 죽음」과 같은 분위기 또는 길예르모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와 같은 잔인한 동화의 느낌이 좋다고 한다. 특히 어두운 가운데서 피어나는 팀 버튼의 상상력은 그를 정말 천재란 생각이 들게 한다고.




    부부가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어려울 때도 있을 듯한데 다행히도 이 부부는 부부작가라서 어려웠던 일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각자 개인적인 이유로 힘이 들 때면 서로가 위안이 되기 때문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정효섭 : 밤샘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체력을 좀 더 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힘들었던 때가 2006년 아내가 셋째 아이를 가졌을 때였는데 그 때는 그림에 대한 회의도 많이 들어 그만둘까도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작업을 맡게 되었고 그 일을 하다 보니 슬럼프도 금방 극복이 되더군요. 그 전에는 나와 나의 작품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 꺼려져 적극적인 홍보도 하지 않았지만 2007년부터는 서서히 작품 홍보도 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학습지 일러스트 쪽에서는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가 원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말입니다.


    이명옥 : 처음엔 맑고 투명한 느낌이 좋아 수채화 작업을 주로 했었어요. 헌데 아크릴과 같은 불투명 일러스트가 붐이 일자 출판사 쪽에서 수채화는 별로 선호하지 않더라고요. 그 때부터 과슈나 네오파스텔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재료가 바뀌니 그에 맞게 캐릭터도 바꿔야 했습니다. 재료를 두루두루 쓸 줄 알기 시작하자 다시 작업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의 슬럼프 극복기다. 기쁠 때 같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렇듯 힘들고 슬플 때 옆에 누군가 있다는 존재감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이 부부는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명옥 작가가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은 「코코 샤넬」의 위인전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황금 머리카락 세올」 등이다. 이 중 「코코 샤넬」의 일러스트를 맡았을 때는 너무 기뻤다고 한다.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유명한 디자이너의 방대한 작업과 이야기를 단 12장의 그림으로 압축하려니 어려움이 따르기는 했지만 역시 그만의 열정과 정성으로 헤쳐 나가고 있다고. 작업 전 항상 완벽한 자료 수집을 선행하는 이 작가는 이번에도 코코 샤넬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시대별로 재현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끝내고 지금은 스케치 단계에 있다. 자료 수집 중에는 원고 내용 중 실수가 있는 것을 발견하기까지 했다니 정말 대단한 준비 작업이다.

    이런 이명옥 작가도 원하는 데로 표현이 잘 안될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데생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될 때까지 그린다고. 물론 그런 중에도 자료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작업은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해법도 찾고, 스타일도 안정이 된다고.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본인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명옥 작가는 “언젠가 김영주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림은 그리면 그릴수록 어렵다고요. 작가로서 인정받고 자리를 잡아 갈수록 이 말이 뼈 속 깊이 와 닿습니다.”라고 말한다. 겸손한데다 항상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이명옥 작가야 말로 ‘진정한 작가의 길’에 가까이 있는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이명옥 작가가 인기작가로 설 수 있던 계기가 된 작품은 한국슈바이처의 「잠이 안 와요」. 과슈와 네오파스텔로 표현된 이 작품은 글, 그림 모두 이명옥 작가가 손길을 거친 작품이다. 그에겐 이 작품 이후로 출판사의 러브콜을 끊임없이 받을 수 있었던 소중한 작품이라고. 그 후 「트로이 목마」「불교동화」「엄지공주」「벌거벗은 임금님」 등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확실한 이명옥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2003년에 출간된 사과와 토마토의 「잭과 콩나무」 팝업북도 눈에 띄는 작품이다. 팝업북은 배경과 캐릭터에 따라 다르게 기획된다고 한다. 배경을 먼저 그린 후 캐릭터 사이즈를 계산하고 일러스트를 끝낸 뒤 출판사에 보내면 최종 완성은 출판사에서 한다. 편집 단계에서 작가가 그린 스케치를 참고해 배경에 캐릭터를 배치하는 식이다. 이명옥 작가는 팝업북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작가에게 결과물로 만족을 주기는 하지만, 작업 중에는 다른 작업에 비해 재미는 덜한 것 같아요. 책이 나오고 나면 그제야 ‘이 작품이 이렇게 나왔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기다리는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면서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역시 그림이 좋아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




    작가로서 앞으로 바라는 희망에 대해 정효섭 작가는 이렇게 얘기 한다. “출판 시장에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커진 것 같습니다. 작가를 섭외하는 담당자들의 그림을 보는 안목도 높아진 것 같고요. 하지만 작가들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활동여건은 아직 미흡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작료만 해도 10년 전 가격에 비해 비슷하거나 좀 더 내려가 있거든요. 제가 주로 활동을 하고 있는 학습지 시장도 예전에는 단가가 동화와 비슷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내린 것이 사실입니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학습지는 ‘딱딱하고 단순한 그림이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시장의 여건이 좋아지고 작가들도 학습지 일러스트에 대한 인식을 달리한다면 학습지에 서도 좋은 퀄리티와 재미있는 일러스트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라며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한다.

    또한 작가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에이전트의 필요성에 대해 피력하며 선진화된 에이전트의 출현과 적절한 역할수행은 일러스트 시장에서의 첫 번째 개선점이 될 수 있다며 날카로운 지적을 한다. 그 역할을 꾸준한 모습으로 일러스레이터들의 신용을 받고 있는 산그림이 맡아준다면 작가로서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말에 무거운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또한 정 작가는 일러스트를 상품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바이미 (www.vaime.com)와 같은 셀프디자인 샵도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도 얘기한다. 여건이 된다면 그의 단편적인 일러스트를 상품화해 대중에게 바로 다가설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고객이 원하는 일러스트를 원하는 아이템에 바로 전사해서 개인화될 수 있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의견. 물론 한 사람의 작가가 이 모든 과정을 혼자 소화해 내기는 어려움이 많을 터. 뜻이 맞는 몇 명의 작가가 함께 동참한다면 그 또한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결국은 일러스트를 통해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다.




    함께 그림을 그리고 부부로 살아온 세월이 길지만 아직 공동 작업은 한번도 해보지 않은 두 사람.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쯤은 공동 작업을 해봄직도 한데 아직 안 해봤다고 한다. 역시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공통된 꿈이 있다. 나중에 정효섭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게 되면 함께 부부 전시회를 갖고 싶다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전에는 서울을 벗어난 넓은 작업실을 얻어 조형작업과 같은 그림 외적인 작업과 일을 떠난 순수작업을 함께 해보고 싶다는 소망도 얘기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부부지만 함께한 시간에 비례해 두 사람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닮아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르지만 닮은 정효섭, 이명옥 부부. 그들의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기도해 본다.




    Editor_ 전선미 ( E-Mail : guroemon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