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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방미인 일러스트레이터 전병준 [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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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산그림
  • 등록일 : 2015-06-07
  • 조회수 : 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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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이 시작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오후. 그 날 따라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하늘이 왠지 비라도 내릴 것 같았던 날. 카메라와 인터뷰 준비물로 꽉 찬 취재가방 안에 우산 하나를 더 구겨 넣고 은평구 신사동으로 향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전병준 작가를 만난 날이다. 깔끔한 현대식 빌라에 마련된 그의 개인 작업실로 들어선 순간. 캐주얼 차림이지만 전혀 헐렁해 보이지 않는 깔끔한 외모의 전병준 작가가 아기 고양이 2마리와 함께 기자를 맞이한다. 흐리던 날씨도 그의 작업실에 카메라를 on 하는 순간 밝은 햇살로 작업실을 비춰준다. 작업할 때의 복장이었겠지만 기자는 ‘편하게 보이시려고 캐주얼 차림을 하셨나...’ 하는 착각을 했다. 그만큼 군더더기 없어 보이는 전병준 작가를 보는 순간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실용주의. 20년이 넘게 일러스트를 그려오고 있는 작가시라더니 작가 전병준의 21년 역사가 더욱 궁금해 졌다.




    88년. 그가 처음 일러스트를 시작한 해이다. “당시에는 일러스트라는 말도 없었어요. 삽화나 컷그림 정도로 불렸죠.” 그의 말마따나 어렵던 시절. 지금처럼 일러스트가 각광을 받기 훨씬 전부터 그림에 대한 열정 하나로 무작정 일러스트를 시작한 작가 전병준. 출발은 모음기획(현 어깨동무)에서였다. 수채화로 작업한 「좁쌀 한 톨로 장가든 총각」을 첫 작품으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기획실에서 2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상계동에서 여의도로 매일 출근해야 했어요.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다 보면 출근 시간만 3시간이 넘는 때도 많았습니다.


    아무리 일찍 출발을 해도 지각이 잦을 수 밖에 없었지요. 출퇴근 시간이 길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도 될까?’하는 회의가 들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던 중 동원훈련에서 이희탁 씨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랑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퇴사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라며 프리랜서가 된 계기를 이야기해 준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친구와 오랜 기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도 그가 가진 축복이자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27살 젊디젊은 나이에 홀로 서자니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 일러스트관련 단체로는 출판미술협회정도를 꼽을 수 있겠네요. 하지만 지금의 산그림이나 개인 홈페이지 같은 매체는 아직 없던 때였습니다. 직접 발로 뛰는 홍보 외에는 방법이 없었지요. 일단 서점에 가서 단행본을 뒤져 출판사 전화번호를 받아냈습니다. 거절도 많이 당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열심히 뛴 결과 가나출판사에서 과학 상식 일러스트를 맡겼습니다. 상황 컷이었는데 한 컷 당 2천원이었어요.” 지금의 화폐가치로 생각하면 너무나 싼 가격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의 일도 전 작가에게는 소중한 작업이었다고. “아마 100군데 이상은 다녔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비파라고 하는 사보편집 대행사와도 연이 닿아 BC카드 표사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효도가 주제였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지요. 그 일을 계기로 사보 일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알고 지내는 기획사에서 일을 몰아주기도 했고요. 나중에는 작업량이 많아 사람을 뽑아서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 정도로 안정되기는 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시 출판사에 취직을 하게 된 사정이다. 그의 재주를 눈 여겨 보던 예림당에서 취업제의가 들어왔다. 함께 일하던 후배를 데리고 들어가는 조건으로 다시 출판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서의 3년 동안 작가 전병준은 여러 권의 히트작을 내며 아동 출판계에 한 획을 그었다. 「공룡은 어디로 갔을까?」, 학습만화 시리즈 「속담」으로 학습만화 붐을 일으켰고, 고전만화 시리즈까지 연달아 히트 치게 되었다. 옴니버스 동화책 「전래동화 모음집」「영작」「이솝」을 마지막으로 예림당과 결별하고 다시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그 간의 히트작들로 인해 업계에서 쌓은 명성과 그의 실력을 알아본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동화를 하고 싶었던 그에게 다시없는 기회였고, 교원과 프리랜서 계약을 시작으로 드디어 작가 전병준은 드디어 인기 프리랜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이 실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지금도 쉽게 그림을 그리진 않아요. 항상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제가 잘 그린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작가로서 도태되지 않도록 항상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고 기법을 바꿔가며 제 자신을 시험합니다.”라며 겸손하게 말한다.




    실제로 그는 아크릴이든 먹 작업이든 여러 가지 재료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기법이나 표현도 작품에 따라 무척 다양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래서 한 달에 4~5권씩 진행했다는 풍문도 그를 따라다닌다. 이 말에 그는 “한 달에 4~5권씩 작업하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요. 오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식사, 휴식 시간을 빼고 하루에 12시간 정도 작업하니까 작업량이 많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해도 한 달에 한권하기도 힘듭니다.”라며 웃는다.

    작가주의와 프로와의 경계에 대한 질문에는 “모두 좋아 보입니다. 다작하지 않고 몇 작품만 가지고 인세를 받는 작가들도 있습니다만, 가정을 꾸려야 하 는 남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경제적인 것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도 이러저러한 압박 없이 일 년에 서너 권만 작업한다면 더 마음에 드는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봅니다.” 라며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현실적인 입장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그런 그도 슬럼프가 없을 수만은 없다고 한다. 하루하루 바쁘게 작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건 진짜 내 그림이 아니야.’ 라는 느낌이 든다고. 좀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면 그 때부터 진도 나가기는 힘들다고. 그리고 찢기를 반복하다 보면 헤매던 과정들이 조금씩 나아진다고. 오랜 세월 작가로 살면서 겪었던 슬럼프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스스로 말하는 그의 부족한 점은 동양화를 한다고 해도 전공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그림들의 좋은 요소를 보며 연구를 많이 한다고 한다.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 배울게 많다는 그는 정말 욕심이 많은 작가인 것 같다.


    한 가지 더. 오랜 기간 출판업계에 몸담고 있던 그에게 출판사를 운영해 보는 것은 꼭 수행해야 할 도전과제처럼 다가왔다. 그리하여 기획물 50권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차근차근 진행했지만 30권 밖에는 완성하지 못했다고. 계획과는 많이 벗어났지만 인세작업으로 진행한 것에 의미를 둔다고 한다. 인세 작업에 대해서도 잠시 얘기를 했는데 1만부 선인세를 받더라도 매절계약의 50% 수준 밖에는 작가에게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1만부 이상 책이 판매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팔리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현실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그는 욕심나는 책이 있다면 이익에 구하지 않고 인세 계약을 추진한다고 한다.




    작가 전병준이 존경하는 작가로는 김복태 선생을 꼽는다. “사실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사람들은 다 존경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지요. 김복태 선생님은 연세가 있으심에도 감각이 전혀 뒤쳐지지 않으시는 걸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본인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대한 질문에는 “추상적인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들을 보면 가끔 부러울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그 쪽 컨셉으로 갈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그리고 있는 스타일을 더 발전시켜서 더 완성도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공감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건 작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람이겠죠.”라며 앞으로의 작업방향을 이야기 한다.


    그런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는 법정 스님의 「참 맑은 이야기」와「참 좋은 이야기」를 꼽는다. 평소에 그 분의 책을 읽으며 존경하던 분의 원고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니 정말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지금은 기획 중이지만 그는 앞으로 유아 그림책에 켈리그라피를 도입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한다. “유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지그림책에 요즘은 사진이미지가 많이 쓰입니다. 글씨체도 딱딱한 인쇄체가 많이 쓰이고요. 아이들 책이니만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일러스트에 부드럽게 풀어 쓴 켈리그라피 한글을 접목하는 겁니다. 한글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에게 예쁜 그림과 글씨로 공부할 수 있게 해주고, 거기에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면서 설명할 수 있도록 말머리를 달아주면 아주 괜찮은 책이 나올 것 같습니다.” 올해 안에 꼭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라고 한다. 기자가 들어봐도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 항상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도전하는 작가 전병준. 역시 그는 크게 볼 줄 아는 작가란 생각이 든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은 일러스트 강사다. 일러스트아카데미(http://www.illustacademy.com)의 실질적인 대표이자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일러스트 전문 학원이 별로 없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그간의 변화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전병준 작가는 “그 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수준은 비슷합니다. 그 중에서 열심히 하는 학생이 있고 아닌 학생이 있는 거죠. 우리 학원은 수강을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 시작할 수 있어 학생들 출신도 다양합니다. 수업은 비전공자 수준에 맞춰서 진행하고, 수업 중에는 강사들이 직접 시범을 보이며 테크닉을 노출하는 편입니다. 시작하는 학생들에겐 그런 점이 많은 도움이 되지요. 특히 저희 아카데미는 상황과제를 많이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콩쥐 팥쥐」를 주제로 던져주면 구성, 채색, 캐릭터 3박자에 맞게 작업하면서 연출력을 향상시키는 식이지요. 그래서인지 수료 후 실무적응이 빠른 편입니다.”

    선생으로서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이는 그를 보니 작가 전병준만큼이나 강사 전병준도 '전병준'을 얘기할 때 빼놓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작업에 지장을 받진 않는지 걱정이 됐지만 강의 다음 날만 조금 힘들고 바로 작업에 몰두한다는 그를 보니 사명감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음악에도 관심이 많은 전 작가는 중학교 때부터 치기 시작한 기타도 수준급으로 연주한다. 그렇지만 그는 앞으로 여건이 허락한다면 통기타와 일렉기타를 다시 처음부터 정석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한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이미 수준에 올라 있지만 마음에 들때까지 제대로 다시 배우고 싶다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그가 일러스트계에 기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10년, 20년… 시간이 지난 후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되돌아 올 것임을 확신하며 그와의 즐거운 만남을 마무리한다.




    Editor_ 전선미 ( E-Mail : guroemon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