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훈미술관] 유한이의 노란벽돌길 [2002-10-02~200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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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200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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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훈미술관 :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5
    (tel) 02-733-6469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젠가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봤다. 회오리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집, 허수아비 아저씨. 빨간구두...너무나 흥미진진하게 봤던 그 영화 중에서 특히 인상깊게 남은 이미지가 하나 있다.
    노란 벽돌길. 왠지 모르게 그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고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특히나 보도블록을 보게 되면 자주 노란 벽돌길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길들이 노란 벽돌로 된 길이라면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하면서.

    길 위에서 보내게 되는 시간은 즐겁다. 운전을 하고 있건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있건 혹은 걷고 있건, 목적지가 있건 없건.
    예전 한 때는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길에서는 어찌 됐든 다른 일거리를 하기 힘드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차안에서 책을 읽으려고 하면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안에서 책보기를 포기하면서 길에서 버리는 시간들에 초조해하지 않기로 했고 여유가 생긴 그 틈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음악도 듣고 따라 부르기도 하고 지난 일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들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저 멍하니 길만 응시하고 있기도 하고...그러다 보니 이젠 길에서 버리는 시간들이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 돼 버렸다. 평상시에 가지고 있던 약간은 강박적인 뭔가를 해야지.. 하는 생각을 잠시 잊고 쉴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장유로워질 수 있었다. 길을 새롭게 그려 보기로 했다. 이전에도 길을 그린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길은 일종의 소통에 대한 은유로써의 길이었다. 그런데 다시 그려보기로 한 길은 이런저런 의미를 뺀 그저 내가 그 위를 가고 있는 길이다. 흘러가는 대로 생각을 내버려 두고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고 귀에 들리는 대로 듣는, 판단한다는 번거로운 행위를 버리고 가는길. 그래서 일 길이 어느 곳으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따라 가리도 하는 길. 실제로 내가 지나온 길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현실을 조금은 벗어나 있는 경험과 느낌을 갖게 해 주는 길이기 때문에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이 아닌 노란 벽돌길이다.
    가끔은 길 위에서 갖게 되는 마음과 머리의 자유로움과 느긋함 때문에 어딘가에 도착한다는 것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이 길이 끝없이 계속 이어지길, 도착이 계속 연장되길 바라기도 한ㄷ. 그래서 저기 보이긴 하지만 영원히 닿을 수 없을 수평선을 향해 가는 길을 생각해 봤다. 어쩌면 내가 가는 길이, 산다는 것이, 수평선을 향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느끼는 길은,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요가 없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시간이다. 마음이 제약없이 아무 곳에나 갈 수 있는, 망망한 데로 열려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갈 곳도 정하지 않은 채로 그냥 길을 나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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